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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계의 천일야화, 평양냉면 TMI

‘알수록 빠져드는 음식’이라는 건 평냉을 두고 한 말, 아닐까요? '처음엔 행주 빤 물'같았던 국물 맛이 자꾸 생각나며, 가스라이팅 당하듯 빠져드는 마성의 음식. 평냉 TMI, 지금 들어갑니다. 

• 냉면은요, 한자 그대로, 찰 랭 冷, 국수 면 麵. 말 그대로 ‘차게 해서 먹는 국수’. 국물은 선택 아닌 필수.
• 최초의 냉면 기록은 조선 중기 문신 장유의 ‘계곡집’에 실린 ‘자장냉면’. 자줏빛 육수에 말아먹었는데, 오미자를 우린 물이라 예상해요.
• 《동국세시기》에서 김치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고, 돼지고기를 얹은 냉면을 음력 11월의 제철 음식으로 소개. 전기가 없던 시절, 찬 김칫국물은 겨울에 더 손쉽게 구할 수 있기에 겨울 별미로 꼽혔죠.
• 우리나라 최초 배달 음식은 다름아닌 냉면! 조선의 양반들뿐 아니라 순조 임금도 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고 해요. 

이렇게 시작하세요

너무 전통적인 집보다 조금 간이 있는 집에서 시작하는 걸 추천!

서울 기준 ‘입문자 환영 평냉집’ TOP 4

이렇게 주문하세요

• 물냉면=평양냉면 메뉴명은 보통 ‘물냉면’으로 돼있어요.

이런 순서로 드세요

1. 육수 먼저 한 숟갈 맹물 같다? 정상이니 당황하지 마세요. 육수가 미지근하다? 역시 정상.

입문자 FAQ
Q: 왜 이렇게 아무 맛도 안 나요?
A: 아직 혀가 적응 중이에요. 미각이 자극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래요. 세 번쯤 계속 먹어보세요.

Q: 메밀면인데 왜 이렇게 질겨요?
A: 남한의 평양냉면은 전분을 섞어서 탱탱한 편이에요. 100% 메밀은 더 부드럽고 툭 끊깁니다.

Q: 왜 고기가 들어가 있죠?
A: 평양냉면의 고명은 수육이 기본이에요. 고기와 함께 먹어야 맛의 중심이 잡혀요.

Q: 진짜 이게 맛있는 거 맞나요?
A: 평양냉면은 즉시적 쾌감보다 서서히 스며드는 맛이에요. ‘틱톡’보다 ‘수묵화’에 가까운 음식이죠.

입문 성공의 신호들
• “이 육수… 은근히 계속 생각나네?”
• “갑자기 자극적인 냉면이 거북해졌다”
• “아, 오늘 같은 날은 평냉이지”라는 말을 하면 성공.

살인적인 물가는 평양냉면 가격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요. 비싼 돈 내고, 다리 아프게 기다리지 않아도 집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평양냉면을 알아봤어요.

오뚜기 김장 동치미 평양물냉면
동치미 국물, 이게 거의 주인공이에요. 깔끔함의 끝판왕. 별도 겨자 소스까지 딱 챙겨줘서 마트 냉면 진열대에서 믿고 사는 아이템이죠. 평양냉면 입문자와 동치미 국물 애호가 모두가 만족할 맛.

CJ제일제당 평양물냉면
일단 패키지 디자인이 깔끔하니 맘에 들었구요. 전통 압면방식으로 면을 뽑아 메밀향이 살아있어요. 소스도 없이 메밀면과 육수만이 봉지에 달랑 들어있으니 너무 당황하지 마세요. 다른 시판 냉면들처럼 삶은 달걀, 오이/배 채 등은 따로 준비해서 먹어야 해요.  

풀무원 육향가득 물냉면
역시 면과 육수로 구성되어있구요. 진한 고기육수와 청량한 동치미 국물이 만났어요. 초고압 제면으로 뽑은 면발은 쉽게 붇지 않고, 전분이 빠지는 걸 막아서 육수의 청량함을 유지시켜 준대요. 풀무원 육향가득 고메밀 물냉면의 신버전 같아요.

이순실의 평양냉면
탈북 셰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순실이 만든 제품으로 진짜 평양냉면을 강조하고 있어요. 물냉, 비냉 혼합 20인분이 39,90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판매되고 있어서 가성비가 끝내주는 제품. 역시나 고명은 따로 준비해야 해요.

봉밀가 평양냉면 밀키트
무절임, 한우고명, 육수, 메밀면이 함께 오는 완벽한 평양냉면 밀키트, 배우 이수경이 해장을 위해 배달된 육수를 마구 들이키는 장면이 방송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셰프가 직접 끓인 한우 1++등급의 육수를 영하 50도에서 급냉해 캔에 담아주는 것이 포인트.

집에서도 ‘냉면집 느낌’ 내는 법

맵찔이 저는 늘 평냉파. 성지순례하듯 맛집을 찾아다니진 않지만, 단골집은 잘 챙기고 있죠. 다만 요즘엔 평냉 가격이 너무 올라서, 집에서 시판 냉면을 자주 즐기고 있어요. 그중에서 풀무원 ‘평양물냉면’이 꽤 좋아요! 동치미 국물과 고기육수가 섞여 있는데, 사실 동치미 맛이 더 나요. ㅎ 시판 냉면이라도 냉면집 비슷한 비주얼을 내기 위해 꼭 달걀부터 삶고, 무를 얇게 썰어 소금에 살짝 절여서 준비해요. 전 오이를 빼는 편인데, 향이 강해서 육수 맛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요. 반찬은 열무김치를 강추! 이 조합이면 기분 좋게, 부담 없이 한 그릇 뚝딱입니다.

치아교정기 장착자의 냉면 먹는 법
교정기를 낀 사람에겐 몇 가지 금기음식이 있어요. 고춧가루 들어간 거, 섬유질 많은 거, 길고 탄성 좋은 거. 마지막에 해당되는 음식이 바로 냉면입니다. 길고 엘라스틱한 종류는 교정기에 감겨버려서 목넘김에 쥐약이거든요. 그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덜 쫀쫀한 평양냉면이 답.
가위로 조사(?)준 다음, 쯧쯧거리는 앞사람의 표정을 무시한 채 숟가락으로 퍼먹는 평냉은 네, 맛있답니다. 면발 따로, 국물 따로가 아니라 면과 국물이 섞여진 채로 입안으로 들어와 보통의 평양냉면과는 다른 맛을 선사해요(이걸 술안주 스킬로 활용한다는 소식은 나중에 들었습니다).

😚 이 대목에서 소신 발언?

나만의 평양냉면 즐기는 법이라… 글쎄요. 내 돈 내고 스스로 평냉 먹으러 갈 일이 절대 없는 사람으로서 내가 평양냉면을 즐기는 법을 쓰자니 아주 막막합니다. 음식도 인생도 ‘쫄깃’한 걸 좋아하는 저는 누가 뭐래도 함흥파거든요. 그리고 특히나 비빔파입니다. 혹자들은 비빔이 냉면이냐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달큰 쌉싸름한 양념의 참맛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죠. 평양냉면이 인문학적 수준의 탐구와 찬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연사! 감히, “나는 함흥비빔냉면을 좋아하노라~” 목놓아 외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