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 인간계에 쇼펜하우어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어요.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원래 고통이다’의 명언으로 대변되는 철학자. 우리의 삶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열심’을 미는 분위기에서 ‘수고했어 오늘도’의 위로를 지나 ‘당신의 인생이 왜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200년 전 사상가의 팩폭까지 당도한 것 같아요. 2023년 우리가 사로잡힌 쇼펜하우어의 세계- 요정도사전에서 한번 알아볼게요.

나는 어떤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인기를 반영하듯 서점에는 쇼펜하우어를 중심에 둔 다양한 책들이 출판이 되어있어요. 요정도사전만의 시각으로 그 책들을 큐레이션 해봤습니다.

🖋️ 글쓰기에 도움을 받고 싶은 당신
쇼펜하우어의 저서 중 가장 인기를 얻었던 말년의 성공작 <소품과 부록>을 옮긴 책, <쇼펜하우어 문장론 - 김욱옮김 지훈출판사>를 추천합니다. 좋은 글쓰기를 위한 3가지로 사색(깊이 생각하기), 글쓰기와 문체(자신의 생각을 녹여서 쓰기), 독서(생각하며 읽기)를 제시하며 글쓰기의 방법론을 알려주는 책이에요.

🖋️ 온 세상에 욕하고 싶은 당신
신랄하면서도 있어보이게 상대방을 씹어주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 <회의주의자 쇼펜하우어, 모욕의 기술 – 문정희옮김 위즈덤하우스>. '쇼펜하우어의 저술과 논문에서 가려 뽑은 온갖 험담 목록!'이라는 출판사의 서평처럼 쇼펜하우어와 그를 둘러싼 각종 독설 일화들이 등장합니다. 화는 이렇게 승화시켜야 하는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될 지도.

🖋️ 모든 논쟁에서 이기고 싶은 당신
<항상 옳을 수는 없지만 항상 이길 수는 있습니다. – 권기대옮김 베가북스>,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공격하고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황당할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이기는 대화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요.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고매한 존재가 아니야 얘들아~ 라고 쇼펜하우어가 꼬집어주는 듯해요. 

🖋️ 쇼펜하우어를 깊이 알고 싶은 당신
행복론에 글쓰기에 독설에 이쯤되면 쇼펜하우어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시죠? 그렇다면 그와 깊게 만나볼 때입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다양한 출판사에서 번역서들이 나와 있기 때문에 하나를 추천드리긴 어렵네요. 같은 제목의 책을 찾아 살펴보신 후 번역이나 구성이 본인의 취향에 맞는 걸로 고르면 될 것 같아요.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 유행에 뒤지고 싶지 않은 당신
‘나혼자 산다’에서 배우 하석진이 맛집 오픈을 기다리며 읽은 것으로 유명해진 책.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강용수지음 유노북스> 미디어에 노출된 후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미디어셀러라고 부른다는데,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붐까지 타며 대표적인 미디어셀러가 되었어요. 그러니 유행에 뒤지고 싶지 않다면 꼭 읽어봐야죠. 쇼펜하우어 철학에 기초해 인생론과 행복론을 펼치는 술술 잘 읽히는 책입니다.

쇼펜하우어의 까칠한 인생  

그의 철학보다 그의 인생은 훨씬 재밌어요. 천재적 두뇌를 가진 쇼펜하우어의 하찮은 성품을 풀어봅니다. 혹자는 그를 가십으로만 소모한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이런 말들도 있더라 수준에서 이해해주세요.

🖋️ 모순의 중2병 철학자

▶ 여자를 사랑한 여혐주의자

여성혐오의 발언을 쏟아냈지만 사실은 여성을 사랑했고 연애를 많이 한 사람이에요. 캐롤라인 메돈, 카롤린 에게만 등 많은 여성과 사귀었고 이 중엔 유부녀도 있었죠. 심지어 동거생활도 했고 결혼도 하려고 했습니다. 니체가 그를 호색한이라고 비난할 정도. 더 자세한 얘기가 궁금하다면 여기

▶ 채식을 장려한 대식가

쇼펜하우어는 채식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고기를 즐겨먹었으며 철학자답지 않게(?) 굉장한 대식가였어요. 쇼펜하우어는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두 사람 몫은 먹는다. 그 대신 두 사람 몫만큼 생각한다." 본인이 생각해도 많이 먹는 게 좀 창피했나 보죠?

▶ 목숨에 집착한 자살권유자(?)

쇼펜하우어는 자살도 인간의 실존적 선택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을 뿐, 자살을 권하진 않았어요. 심지어 본인은 생명에 강한 집착을 보이죠. 비상시에 빠르게 대피할 수 있도록 낮은 층의 집에만 살았고 묵던 여관에 불이 나자 누구보다 빠르게 탈출했다고 해요.

🖋️ 의심병 환자

행여나 다칠까 이발사가 목 근처엔 면도날을 대지 못하게 했어요. 외출땐 마실 물을 들고 다녔고요. 본인이 정말 죽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자신을 묻을까봐 걱정도 했어요. 그래서 자신의 죽음이 확인된 후에 관을 덮으라는 유언을 남겼어요. (이정도면 병..)

🖋️ 명성을 갈구한 관종

칸트처럼 이른 아침 정확한 시간에 산책하는 걸로 명물이 되고 싶었던 쇼펜하우어- 하지만 잠이 많은 탓에 남들 다 일하는 오후에 나타나 사람들의 조롱을 샀어요. 교수시절엔 헤겔을 이겨 유명해지고자 헤겔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잡았구요. 헤겔의 강의는 꽉 찬 반면 쇼펜하우어의 강의는 학생이 없어 폐강. 그러나 그의 관종력은 끈질겼고 노년엔 유럽인의 존경을 받게 돼요.